『정의란 무엇인가』는 하버드대학교 정치철학 교수 마이클 샌델이 대중을 위해 쉽게 풀어낸 정치철학 입문서이자, 현대 사회의 윤리적 딜레마를 해부하는 대표작입니다. 이 책은 다양한 정의론을 소개하며, 공리주의,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등 상반된 가치관을 비교·분석하고, 현실 문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제시합니다. 본 글에서는 마이클 샌델이 다룬 핵심 정의론들을 중심으로 그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공리주의 정의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공리주의는 벤담과 밀로 대표되는 고전적 정의 이론으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정의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매우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철학처럼 보이지만, 샌델은 공리주의가 안고 있는 윤리적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등장하는 것이 트롤리 딜레마입니다. 기차가 5명을 치기 직전인데, 선로를 바꾸면 1명이 죽습니다. 과연 선로를 바꾸는 것이 정의로운가? 공리주의적 접근은 5명보다 1명이 죽는 것이 덜 고통스럽다고 판단하므로 선로 변경이 옳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샌델은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수단으로 삼아도 되는가?” 공리주의는 개개인의 권리를 ‘전체의 효용’ 속에서 상대화할 위험이 있습니다. 특히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가 다수의 이익 앞에서 쉽게 희생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 민주사회에 적합한 정의론인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샌델은 공리주의를 단순히 비판하기보다는, 공공정책이나 복지 논의에서 이 사상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세금 정책, 의료보험, 공공사업 등에서 비용 대비 효과를 따지는 기준이 바로 공리주의적 사고의 산물입니다. 하지만 이 기준이 개인의 존엄이나 권리보다 우선될 때, ‘정의’는 단순한 숫자놀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자유주의 정의관: 개인의 권리와 선택의 자유
자유주의 정의론은 존 롤스나 로버트 노직 같은 사상가들에 의해 발전되었으며, ‘개인의 자율성과 선택’을 핵심 가치로 삼습니다. 자유주의는 공리주의와 달리,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개인이 어떤 삶을 살든 간섭받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샌델은 이 사상에 대해 부분적으로 공감하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놓지 않습니다. 롤스의 ‘무지의 베일’ 개념은 사회 구성원들이 출신, 능력, 환경 등 모든 정보를 차단한 상태에서 정의로운 사회의 원칙을 설정하자는 제안입니다. 이 개념은 공정성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설득력 있지만, 샌델은 "과연 인간이 그 정도로 자율적인 존재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샌델은 인간이 ‘분리된 자아’가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가치와 정체성을 형성하는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자유주의가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그 선택이 형성되는 배경과 공동체적 맥락을 무시하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추상화한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또한, 노직의 자유지상주의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노직은 재산과 소유를 개인의 절대적 권리로 보지만, 샌델은 “모든 부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사회적 책임과 연대의 필요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공동체주의 정의관: 우리는 누구와 함께 사는가
샌델의 대표 철학은 바로 공동체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는 인간이 완전히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문화·가정·역사·국가라는 공동체 안에서 형성된다고 봅니다. 공동체주의 정의관은 단순히 ‘개인의 권리’만을 강조하지 않고, 책임, 의무, 연대 등의 가치를 함께 고려합니다. 샌델은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 없이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즉, 개인의 선택은 항상 사회적 맥락과 연결되어 있으며, 정의로운 사회란 이 맥락을 존중하는 질서 위에서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병역 의무, 세금 납부, 공공재 기여 등은 개인에게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공동체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기본적 장치입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이를 ‘강제’로 보지만, 공동체주의자는 ‘참여와 책임’으로 이해합니다. 샌델은 정의에 대한 판단은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정책이 정의로운지를 판단할 때는 반드시 공동체가 공유하는 가치, 역사, 정체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관점은 특히 윤리, 종교, 교육, 복지 등 민감한 영역에서 더욱 설득력을 가집니다. 그는 우리가 어떤 공동체 속에 살고 있으며, 어떤 가치를 함께 지켜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들며, ‘정의’를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삶의 철학’으로 끌어올립니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복잡한 철학 이론을 현실 사회의 갈등과 윤리적 문제에 연결시켰습니다. 공리주의, 자유주의, 공동체주의라는 세 가지 정의론을 비교하며, 각 이론이 가진 장단점을 통찰력 있게 조명합니다. 그의 철학은 단순히 이론적 사고에 그치지 않고, 시민으로서의 고민과 판단을 이끌어냅니다. 오늘날 우리는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권리, 다수의 행복과 소수의 권리, 자율성과 공동체 가치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찾아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샌델은 “진정한 정의는 대화를 통해 완성된다”고 말합니다. 그의 철학은 우리가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도록 안내합니다.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단순히 '무엇이 옳은가'가 아니라,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입니다. 이 글을 통해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 나와 사회를 성찰하는 철학적 출발점으로 삼아보시길 바랍니다.